납품 계약 해지·폐업시 위약금·이자 내야…대출금 조기 상환해도 '꼬투리'
이자율 법정 최고인 연 25%…현행법상 "대부업 보기 어렵다" 제재 못해
"아무 말도 없다가 계약 해지하니 연체 이자를 달라네요."
세종특별시에서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 2곳을 운영 중인 A씨는 얼마 전 황당한 소식을 받았다.
과거 주류 납품 계약을 맺었던 도매 업체가 대출 연체금 명목으로 700만원을 물어내라고 통보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해당 업체에서 주류 대출로 5000만원을 받았다. 매장 두 곳을 리모델링하기 위해서였다.
무이자로 매월 15일 200만원씩 분할 변제하는 조건이었다. 상환은 제때 꼬박꼬박 이뤄졌다.
그러던 중 A씨 매장에 다른 주류 도매 업체 영업사원이 찾아왔다. 영업사원은 밤늦게까지 매장 일을 거들거나 수시로 찾아와 안부를 전했다.
친분을 쌓은 뒤로는 A씨에게 제안도 했다. 낡은 냉장고를 바꿔 줄 테니 주류 공급권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인간적인 모습에 끌린 A씨는 결국 주류 업체를 바꾸기로 했다. 기존 업체에서 받은 대출금이 남아 있었으나 중도상환하기로 했다.
여기서 끝난 줄 알았다. 평소처럼 생활하던 A씨에게 휴대전화 메시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매장별로 대출금 이자가 적힌 표를 찍은 사진도 첨부돼 있었다.
'719만4399원'. 기존 주류 납품 업체가 물어내라고 한 돈이다.
A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이자 대출금, 그것도 다 갚은 돈을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계산기를 여러 차례 두드려 봐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기존 계약 업체에 변제를 다했는데 무슨 소리 하냐고 따졌더니 '공증 서류를 보세요'라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이후 전화를 하니 바쁘다고 하거나 연락을 준다고 한 뒤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업체가 보라고 한 공증 서류에는 '채무자가 원금 또는 이자의 지급을 지체한 때에는 지체된 원금 및 이자에 대하여 연 25%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채권자에게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제야 A씨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류 대출 첫 상환 월에 이틀 늦게 돈을 갚은 기억이 떠올랐다.
A씨는 "첫 달 그것도 이틀 늦게 상환했다는 이유로 고리를 갚으라는 통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계약이 끝난 상태에서 이러니 혼란스럽기 그지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시 아무 말도 없었는데, 지금 와서 이자를 갚으라는 건 계약 업체를 바꾼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주류 대출'이 소상공인을 울리고 있다. 주류 대출이란 주류 도매상에서 수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쓰는 대신 납품 독점 계약을 맺는 제도다.
코로나19로 경영난이 이어지는 때 단비와 같은 돈이라 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다.
납품 계약을 해지하거나 폐업하면 위약금 또는 이자를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출금을 모두 상환해도 마찬가지다.
이자율은 통상 법정 최고인 연 25%여서 대부분 소상공인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물어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현행법상 주류 업체가 소상공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행위를 대부업으로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결국 소상공인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 대출은 경영난을 겪는 소상공인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하지만 나중에 업체와 관계가 틀어지면 반대로 목을 죄는 역할도 한다"며 "현재로서는 소상공인이 대출 약정을 할 때 서류를 꼼꼼히 살펴 불리한 조항을 미리 파악해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